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에 이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연일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중국산 상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를 통한 시장접근 제한을 무기로 중국의 산업과 과학기술 발전을 제약하고, 홍콩 민주화 시위대 지지, 대만과 협력 수준 제고, 미국 해군함정의 남중국해 항해자유의 작전 등 다양한 사안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코로나 사태 관련 책임 규명을 요구하며 중국의 도덕성을 공격하고 있다. 미중 대립은 국제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세계 각국은 어쩔 수 없이 두 거인의 눈치를 보고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의 운명도 미중 간 쟁패의 전개와 결말에 우리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므로 지혜로운 대응이 절실하다.
미국이 고립주의로부터 벗어나 개입주의 정책을 채택한 이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의 핵심 중의 하나는 대서양과 태평양 양안에 지역 패권국이 형성되어 미국에 도전하는 상황을 방지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NATO를 결성하여 소련의 팽창 우려에 대응해 서유럽에 힘을 보태 균형을 유지하거나, 2차대전 당시와 같이 직접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에서 직접 군사적 실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독일과 일본 양 제국을 각각 격파하고 냉전의 적수 소련마저 잡았던 미국은 이제 중국이라는 미증유의 도전자와 샅바 싸움이 지금 한창이다. 그러나 이 중국이라는 상대는 여태 미국이 다루어온 상대와는 전혀 다른 힘든 상대가 될 것이다.
중국은 세계인구의 1/5에 육박하고 현재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미국의 경제 규모를 앞선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시장 경제와 다원주의 사회와 전혀 이질적인 동양적 권위주의와 일당독재 사회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한 반 폐쇄 사회이다. 키신저가 설파한 바와 같이 장구한 역사와 거대한 중국은 결국에는 장대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한국전쟁에 인민지원군의 이름으로 개입했다가 침략자로 미국의 제재를 받아 동북아에 은거하던 중국을 제갈량의 천하삼분 계책을 베낀 미국이 불러낸 것은 미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파시스트 독일과 일본에 이기기 위해 손잡았던 소련과 냉전의 경쟁을 펼쳤던 미국은 이제 중국과 누가 최고인지 겨루는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구의 승리를 선언한 “역사의 종말”은 아마도 프랑스 공산주의자 루이 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는 경구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미중 쟁패의 결말은 오래 지속되는 미래로 쉽사리 결판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앵글로색슨 세력(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다 독일도 색슨 즉, 작센이라는 혈통적 연원을 공유함)은 독보적인 최강의 군사력, 최대 규모의 경제, 기축통화와 독점에 가까운 금융, 연구개발 능력과 시장화의 선두인 과학기술, 국제어로서 영어와 할리우드 연예산업과 같은 문화 소프트 파워 등이 총체적으로 구성되어 이루어진 것이므로 중국이 단순히 경제 규모가 앞선다고 해서 패권에 등극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중국이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불원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세계의 공장이자 미래의 산업 패권을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에 발군의 능력을 보이고 있는 등의 상황을 좌시했다간 미국 나아가 서구 문명의 패권은 분명히 도전에 직면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금번 코로나 사태에 대한 중국의 책임은 물론, 티베트 문제, 위구르 소수민족 인권 문제, 홍콩의 민주 및 인권 탄압 등과 같은 명분으로 중국의 체제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중국을 고립화시키려는 작전을 쓰려는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국 봉쇄망은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주축이 되고 유럽연합은 신중할 것이지만 결국은 참여할 것으로 본다. 중국의 인접 라이벌 일본과 인도도 이에 동조할 것으로 예상되고, 전체적으로 보면 국제사회에서 수적으로 중국은 열세에 몰리게 될 것이다.
상호확증파괴에 기반한 핵전력을 가진 미중 간 경쟁이 격화되더라도 무력 충돌을 상상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비군사적 경쟁력에서 보면 사실상 최대의 시장과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공산당을 중심으로 총체적 동원능력을 가진 중국도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 않을 것이다. 마우쩌둥의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끈 16자전법, 지구전과 같은 전략적 상상력으로 미국의 공세에 저항하면서 버텨나갈 것으로 예상해 본다. 결국 관건은 미국이 주도할 대중국 봉쇄망을 여하히 뚫어내느냐이다. 중국 외교와 소프트 파워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이 경제력이나 군사력에 기반한 구태 권력정치 방식으로 다른 나라를 대한다면 실패할 것이고, 특히 일신된 외교적 자세로 국제사회의 최대 현안인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에 진정 기여하고 동북아의 공존과 번영에 협조한다면 국제사회가 중국을 다시 대할 것이다.
중국이 근세까지 세계 G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거대 문명권이었다고 하지만 그 시대엔 오늘날과 같은 국제사회와 상호의존성이 없었기 때문에 마치 알렉산더 대왕의 장창부대와 진시황의 전차부대가 격돌하는 것과 같이 서구와 쟁패를 겨룰 일이 없었다. 이제 중국이 미국의 라이벌로 부상하면서 서구 문명이 금과옥조로 견지하는 자유민주주의, 다원주의 및 법치주의가 중국식 체제의 효율성에 의해 그 이념적 헤게모니가 도전받는 경쟁을 포함해 여러 분야에서 미중 간 쟁패가 우리 세대를 넘어 전개되면서 향후 세계사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이용일 전 주코트디부아르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