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제뉴스의 주요 이슈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을 넘는 대군을 집결시킨 러시아가 과연 침공할 것이냐 여부이다. 최근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격전으로 우크라이나를 유린하고 수도 키에프를 단시간 내 점령해 이미 점찍어둔 친러 인사를 수반으로 하는 괴뢰정부 구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유럽은 2차대전 이후 70년을 넘는 장기간의 평화를 누리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전쟁의 공포에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통제로 추운 겨울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유럽의 현상유지를 선언한 1975년 헬싱키 체제와 냉전의 종식을 확인한 1989년 미국/소련의 몰타 선언이 이제 그 생명이 다했음을 보여주고, 과연 이후의 세계 정치안보를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근본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러시아는 기동 전력을 자신의 동맹 벨라루스에도 전개하여 우크라이나를 동남북 3면에서 포위한 채 무력시위를 연일 이어가고 있고, 이에 대항해 미국과 NATO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에 군수지원을 강화하면서 여타 동유럽 NATO 동맹국 내 추가 배치를 추진하는 등 양측간 긴장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블링컨 국무장관과 러시아 라브로프 외교장관이 지난 21일 제네바에 회동한 기회에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동유럽 국가의 NATO 추가 가입 금지와 현재 러시아 인접 동유럽 NATO 회원국에 배치된 군사력의 철거를 주안으로 하는 일종의 최후의 통첩(ultimatum)을 서면으로 전달했고 미국 측은 외교적 해결을 원하는 답변서를 보낸 것으로 보도되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필요한 조치를 단행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어 과연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될 것인지, 아니면 미중 중심의 국제사회의 새로운 구도에 러시아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으름장에 불과한지 관심이 간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정치, 경제 및 군사안보 등 측면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행보를 두고 트집을 잡아 군사적 행태를 보이는 러시아의 리더십, 구체적으로 푸틴 대통령 개인 행태와 심리적 상황도 함께 보아야 향후 상황에 관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현실적으로 러시아는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다. 한 예로 GDP 규모가 대한민국보다도 작다. 다만, 냉전시대 이래 세계 2위권으로 추정되는 핵전력을 포함한 군사 부문이 비정상적으로 큰 군사강대국일 뿐이다. 이게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 세계를 미국과 더불어 호령하던 소련 시절을 그리워하는 대중적 정서가 아직 남아 있지만, 군사력으로 타국을 압박하거나 굴복시키더라도 강자가 획득할 특권적 실질 이득, 즉 시장과 자원의 확보 등 경제적 이익을 실현할 기반이 없는 나라인 러시아가 막연한 자국의 안보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조치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해프닝일 뿐이다. 갑자기 자국과 NATO 사이에 지난 세기의 국제 권력정치의 장치인 세력권을 나누거나 완충지대를 두는 철 지난 구시대 방식의 요구를 강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과연 오늘날 정합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오리엔트 및 중앙아시아 지역의 약탈적 제국의 습성에 노출되어 왔다. 피압박 민족의 해방을 외치던 소련의 붉은 군대가 식민지 주민의 생존의 기반인 산업시설, 예를 들어 수풍발전소의 발전기를 뜯어가고 시민 재산을 약탈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러시아의 안보이익이란 무엇인지 실체가 궁금하기도 하다. 러시아는 다시 발틱에서 발칸까지 거대한 완충지역, 새로운 철의 장막을 설정하고자 하지만, 전세기 이전 식민지나 영향권 하의 국가에 대해 정치경제적 이득을 전유하던 악습이 사라진 현 세기에 그 공간의 실존적 경향성은 공허하기만 하다. 현 유럽의 정치적 지형하에 러시아는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고 그 대가로 유럽의 상품을 수입하는 경제적 상호의존에 바탕한 현상유지를 깨야 하는 근본적 모순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착오에서 비롯된 현실과잉규정이지 않을까 싶다.
근년 들어 헌법개정 등을 통해 영구집권의 길을 연 푸틴 대통령은 이반 대제와 같은 러시아의 영웅적 지도자 반열에 오르고 싶어 하겠지만, 장기 집권의 여파로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가 누적되어 자신의 국내 지지도가 떨어지고 빈곤율은 상승하는 등 정치 입지는 악화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자신이 끔찍이 육성해온 군대에 의존해 외부 이슈를 만들어 내부 문제를 덮고 지지율을 회복하겠다는 생각이 만약에 그 동기라면 이는 큰 패착이 될 것이다. 유엔헌장이 인정하는 지역적 안보동맹을 선택할 수 있는 남의 나라 안보주권을 박탈하는 것은 구소련 시절 동유럽의 자유화운동을 군사력으로 제압한 소위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제한주권론의 재현을 보는 것이다. 중동유럽의 약소국들이 자체적으로 부족한 군사력을 동맹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길을 막고 핵무장 거대 군사대국 앞에 홀로 서라고 강요하는 것이 러시아의 안보이익이라고 강변하는 웃픈 현실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현 사태가 치킨게임으로 변질되어 자존감의 사나이 푸틴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서기(back off) 곤란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NATO 측은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배치해 푸틴의 후퇴 옵션을 제거하는 상황은 회피하고 외교적 해결을 주조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은 군사적 성공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에게 실속 없는 ‘피로스의 승리’가 될 것이다. 유럽이라는 큰 시장을 잃는 경제난은 국내 입지를 재기불능 수준으로 어렵게 하고 국제적 봉쇄에 당면하게 되며 미국의 압박을 덜게 되는 중국의 좋은 일만 하게 되는 국내외적 풍파만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현실감각이 다소 걱정되지만 군사행동은 쉽사리 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된다.
(이용일 전 주코트디부아르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