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우리 국적 유조선 한 척이 페르시아만에서 항해 중에 이란 혁명수비대 함정에 의해 나포되어 이란 항구에 억류 중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현재까지 가용한 뉴스에 의하면 정확한 나포 해역, 나포 사유 등 상황에 관한 정보가 불충분해 이란의 나포 조치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국제적인 관례에 비추어 무고한 우리 선박에 대해 무리하고 부당한 나포라고 판단된다.
이 문제는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복잡다단한 국제정치적 이슈, 즉 미국과 이란 간의 걸프 해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치·군사적 갈등과 긴장에서부터 우리 국내 금융기관 내 동결되어 있는 이란 계좌의 약 70억 미불 자산 문제까지 포함하여 고려되어야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로 우리가 주장(claim)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행동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규칙에 입각해 평가하는 것이 가장 정당하다는 것은 이론이 거의 없을 것이므로, 이란의 금번 나포 행위가 국제법, 특히 해양법의 원칙에 비추어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해양법 장전인 유엔해양법협약을 그 평가의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나, 이란은 이 협약이 채택되던 1982년 서명은 했지만 아직까지도 비준을 하지 않은 까닭으로 이 협약이 이란에 대해 적용될 것인지는 다소 고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약법의 원칙상 협약 서명국으로 이란은 이 협약의 목적 및 대상을 몰각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법규범으로 협약의 기본적인 제도인 영해, 배타적경제수역 및 국제항행용 해협통항 제도는 협약의 비준 여부를 떠나 이미 상당 부분 국제관습법으로 굳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이란 당국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법규범인 해양법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보도 내용만 보면, 우리 선박이 사우디 항만을 출발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직전에 나포된 것으로 보이며, 이란 측 발표에 따르면 동 선박의 해양오염 행위에 따른 자국의 사법절차에 입각한 조치라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 선사 측은 나포지점이 공해(公海)라고 설명했는데 페르시아만 지역은 좁은 해역으로 기술적으로 공해는 없기 때문에 아마도 이는 영해 바깥의 최대 200해리(약 370km) 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이란 측 수역인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일단 이란의 EEZ에서 나포된 것으로 보인다. 기실 EEZ라는 연안국의 관할수역은 해양자원에 대한 연안국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고, 선박의 항해에 대해서는 공해의 자유와 같이 인정되기 때문에 선사 측은 공해상 항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란은 자국 EEZ에서 환경보호에 관한 관할권은 가지고 있지만, 해양법은 항해의 자유를 향유하는 외국선박을 정선하고 나포하는 권한은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며, 해양오염의 혐의가 있더라도 그 위반을 판단하는 법규는 이란의 법규가 아니라 국제해사기구(IMO)와 같은 국제기구가 제정하는 해양환경법규여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 나포와 억류와 같은 조치는 엄청난 오염 사고를 내는 정도의 심각하거나 중대한 해양오염을 야기하는 사태에 이르러 사법절차를 위해 허용되는 것이 국제적 규칙이다. 우리 선박이 국제규칙을 위반해 이러한 중대한 해양오염 사고를 내었는지 이란은 명백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며,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즉각 석방은 물론이고 해양법규칙에 따라 항해중단 등에 따른 피해를 보상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란 측이 주장하는 해양오염이 발생한 장소가 어디인지는 불명하지만 자국 영해에서 발생한 해양오염을 이유로 영해 바깥까지 나와 항해 중인 선박을 나포, 억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폭이 24해리에 미달해 중간에 이란과 오만의 영해가 겹치는 호르무즈 해협 내부에까지는 우리 선박이 진입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 보이는데, 호르무즈 해협은 전형적인 국제통항로로 그 자유통항은 거의 절대적으로 보호되며 외국선박은 연안국의 단속 등 관할권 행사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우리 선박이 거길 지나가다 이란에 나포되었다 하더라도 부당한 점에는 차이가 없고, 이는 유엔 협약에서 통과통항(transit passage)라는 제도로 보장되고 있다.
이란은 유엔해양법협약에 서명하면서 EEZ 및 통과통항이라는 제도가 그전에 존재하던 국제관습법이 아니라 이 협약의 협상을 통해 창안된 수역이라고 하면서 협약당사국이 아니면 그 혜택을 누려서는 아니 된다는 의견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다분히 이 협약을 거부하던 미국을 염두에 두고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권에 제동을 걸어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되지만, 역으로 현재 EEZ를 선포하고 관할권을 행사하지만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는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이란이 금번 나포와 같이 자국 EEZ 등 관할수역에서 권한을 행사하려면 이 유엔협약의 원칙에 의해 이러한 행동이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란은 최근 미국과 정치군사적 긴장 상태에서 미국 등 서방측에 대한 직접적 도발이 아닌 제3국인 우리 선박을 대상으로 자신의 의지를 행사해 보고 국제적 반향을 테스트하며, 나아가 한국 내 자신의 금융자산 동결에 대항해 우리 선박의 석방을 조건으로 거액의 보증금을 요구함으로써 한/이란 관계에서 사용할 레버리지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해 본다.
(이용일 전코트디부아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