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90년대 후반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영사로 근무하면서 거기에 소재하고 있는 국제민항기구(ICAO)의 대한민국 상주 차석대표를 겸하다 보니 자연히 항공운송 분야를 접하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외무부 본부로부터 ICAO가 주최하는 여권 표준화 회의에 참석하는 우리 정부대표단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고 공항에 나가 대표단을 맞이하게 된 기회에 수석대표였던 당시 외무부 여권관리관에게 항공 관련 기구가 여권을 다루는 게 좀 이상하게 보인다고 했더니, ICAO가 국제여행의 편의 증진을 위해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여권이나 비자의 양식과 위변조 방지를 위한 기술에 관해 표준화 작업을 수행하는 국제사회의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보통 아는 생체인식, 전자/디지털 여권과 같은 것이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제적으로 통용되게 된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국제사회는 COVID19 창궐의 정점에서 백신 접종이 개시되고, 일부 차질은 있겠지만, 선진국으로 중심으로 빠르게 접종률이 올라가게 됨에 따라 중단된 관광 등 일반인들의 국제여행을 회복하는 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대규모 국경이동을 허용하는 관건은 감염을 방지하고 선별해 내는, 즉 감염 및 전파 리스크를 최대로 줄이는 시스템을 창안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는 바로 예방접종과 음성 검사판정을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해외여행을 갈 때 필수품으로 비행기 티켓과 여권을 소지하게 되니 여행객 개인의 접종 및 검사 결과는 이러한 증명서에 표기되거나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외신 보도에 의하면, 이미 유럽의 아이슬란드가 ‘코로나 백신 여권’을 자국 피접종자에게 발급하기 시작했고, 헝가리와 이스라엘도 곧 이를 따를 것이라고 한다. 관광대국인 스페인이나 그리스는 관광 시즌을 앞두고 접종 증명이 없으면 입국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 개개가 이러한 증명서를 각개약진으로 발급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이를 인정할지는 미지수라 결국 국제사회의 권한 있는 기관이 통일적 규칙과 양식을 정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도록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미 ICAO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와 함께 감염검사 및 백신 접종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되는 방식으로 증명하는 통일양식을 개발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미 상당한 연구·검토가 이루어진 걸로 보이는데, 개인 접종 및 검사 정보를 암호화된 바코드로 여권에 심고 이를 출입국 내지 검역 통과 시 스캔 방식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으로 갈 것으로 예상해 본다. 문제는 백신이 다양한 업체와 국가에서 개발되어 접종되고 있는데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백신의 기준에 관해서는 WHO의 공인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겠지만, 효능과 관련하여 일부 백신의 공인 여부를 두고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이다. 한편, 감염검사의 경우 유효기간이 짧기 때문에 복수비자와 같이 취급될 수 있는 백신 접종과는 달리 사실상 단수비자와 같이 일회성 여행밖에 활용되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감염 사태가 점차 진압됨에 따라 결국 백신 접종 증명만 계속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는 서아프리카 지역 근무차 국립의료원에서 황열병 예방접종을 받고 빳빳한 노란 쪽지 접종 증명서를 여권에 끼워 다녔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해외여행을 가려면 코로나 예방접종이 기재된 여권을 가져야 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ICAO가 통일양식을 협의하고 공포하는데 우리측도 적극 참여하여 그 표준화에 우리 의견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비자 없이도 여행할 수 있는 국가 수를 기초로 측정하는 각국의 여권 파워 랭킹을 보면 우리 여권은 독일과 함께 전 세계 모든 여권 중에서 공동 3위이고 미국과 영국보다도 순위가 높을 정도로 우리 여권의 국제적 신인도는 최고 수준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변함없이 우리 여권이 해외여행의 장벽을 통과하는 마패로서 역할을 최고도로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해외여행은 국제통상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이므로 사전에 정책적으로나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이용일 전 주코트디부아르대사)